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수백 년 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화에 실패한 청과 조선이 몰락했고.김옥균의 생각은 루쉰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주로 국내 학자들은 일본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기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악질적인 식민지화 과정이었다.숱한 요인 얽혀 일본 책임론.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지식인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의 청년들에게도 당시 일본은 이상적인 국가였다.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
정치적 선동 가능성 경계해야 이렇게 난해하게 얽혀 있는 당시 상황에 대해 역사학계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논쟁을 진행했었다.
[중앙포토] 이 시기를 바라보면서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논쟁점은 동아시아 국가 중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책임 소재 문제였다학계와 시민사회의 거리를 좁힐 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도 이미 너무 늦었다.그러나 과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을 하면서 논쟁이 진행되었는지 의문이다.
조선 정부는 떠 넣어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강화도 조약과 시모노세키 조약 물론 이러한 주장은 19세기 말 일련의 과정을 보면 실효성이 없다.